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일시

2018. 03. 23(금) ~ 2018. 03. 25(일)

오전 11시 ~ 오후 8시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6길 33

오프닝

2018. 03. 23(금) 오후 6시

기획

박준우, 전대한

지원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 본 프로젝트는 2018 서교예술실험센터 공간지원사업 [쉐어프로젝트 실험실] 선정사업입니다.

 

* ​프로젝트 제목은 원작자의 동의를 얻어, 곽푸른하늘의 [어제의 소설] 수록곡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에서 따왔습니다.

​폐허의 폐허를 직시하기

아직 시작조차 못 한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정말 좋아하는 어떤 사람과 일을 해보기로 약속은 했는데, 사실 도저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그래서, 언젠가 답을 찾고 싶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비평이란 무엇인가?”나 “비평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들은 잠시 뒤로 밀어둔다. 그 대신 우리가 서 있는 풍경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 그리고 서로의 옆에서 함께 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붙잡을 수 있는가? 우리의 옆에는 대체 누가 서 있는가? 슬프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대답은 이런 식일 것이다. 

“대중음악비평”이라는 이 대지는, 비옥하기는커녕 한없이 황폐하기만 하다. 수익을 내는 비평 플랫폼은 결코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는 지속가능성과 무관하게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매체마저도 찾기 어렵다. 너무 많이 바스러진 모래와 흙만이 남은 이곳에서, 우리의 두 손에 잡히는 것은 아름답고 멋진 꽃도 잘 익은 열매도 아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한구석에서 끝없이 자라고 있는 ‘권위’라는 억센 잡초와, 그나마 맺은 훌륭한 산물들마저 좀먹고 마는 ‘부조리’라는 해충은 “대중음악비평”이라는 토양을 황폐하게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이곳을 떠나고 만다. 

이런 식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음악비평은 ‘폐허’의 이미지로써 사유되어왔다. 폐허의 이미지로써 대중음악비평을 사유하는 것은 아주 쉬운 방식인 동시에 무척 자연스럽다. 사실 인접한 다른 영역들의 비평에서도 위기 담론은 늘 제기되어왔다. 대중음악비평의 위기 또한 비평이라는 행위의 본질에 전제된 어떤 불안과 위기감의 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비평에서의 위기는 무척 가시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실제로 수익을 내고 있는 플랫폼은 없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웹진들은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에는 대안적 비평모델로 여겨졌지만, 이제 그것들은 좋은 대안이라기보다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별다른 수가 없기에 택하는 것에 가깝다. 게다가 구조적인 측면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비평계 내 젠더 불균형은 물론이고, 여전히 ‘권위’라는 부질없는 허상을 좇는 고리타분한 비평가-의식 또한 재고해보아야 할 지점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무거운 문제들이 중첩되다 보니, 새로이 진입하는 비평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신진 비평가가 등장하더라도 중첩된 문제들로 인해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해 나갈 물리적 여건과 심리적 동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대중음악비평은 점점 더 동시대로부터 유리된 채 폐허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처음에 물었던 질문들을 다시 한번 묻기로 한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붙잡을 수 있는가? 우리의 옆에는 대체 누가 서 있는가? 이곳이 폐허라는 전제를 통한다면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폐허라면, 모든 게 무너지고 파괴되어 앙상하게 터만 남은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터만 남았기에 동시에 이제는 새로운 무언가를 재건할 수도 있을 법한 곳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곳이 폐허라면, 우리는 부서지고 남은 잔해 더미만을 붙잡을 수 있겠지만, 곧 그것들을 치워내고 새로이 만들어낼 것들을 상상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곳이 폐허라면, 우리의 옆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 이들과 모든 것을 폐허가 아니게끔 만들려는 이들, 심지어 우리조차도 이 이분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는 매우 기만적이다.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말은 폐허에 대한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진술이 아니라, 그저 “모르겠다” 뿐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정말로 폐허라면, 비록 텅 빈 공터이더라도 넓은 대지의 존재만큼은 명확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음악비평’계’라는 장소는 그 실존마저도 의심받는다. 또한, 비록 다 타버리고 남은 한 줌의 재일지라도 손에 잡히는 비평이 있어야 하는데, 비평은 이제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심지어 생산된 비평일지라도 소비되고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물음에도 확답을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파괴된 대중음악비평이라는 폐허를 재건하려는 이들은 당연히 비평가일 것이고, 폐허의 원인인 자들조차도 그들 스스로 비평가일 때만 비로소 대중음악비평을 폐허로 만든 원인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애당초 우리는 비평가인가? 과거의(황금기의) 그 훌륭하신 비평가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여기의 우리는 비평적 기능을 그럭저럭 수행하는 유사-비평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허나, 우리는 분명히 비평가이다. 기획자, 연구자, 필자, 에디터, 기자… 각자의 이름 옆에 붙는 수식어는 제각각이더라도, 우리는 분명 비평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곳에서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다.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생겨나고 있고, 많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산물을 우리 중의 누군가는 분명히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되물어야 할 것은, 폐허 그 자체이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폐허 그 자체가 아니라, 폐허조차 폐허가 되어버린, 폐허의 폐허는 아닐까. 우리는 많은 것을 해왔고 써왔지만, 실은 폐허의 폐허 위에서 한 줄도 쓰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폐허’라는 유령에게 홀려 유예된 시간 속에서 끝없는 공회전만을 반복하며 말이다. 지긋지긋한 시시포스의 신화를 우리가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라는 자기 고백적 시간이 아주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적어도 우리가 폐허라는 유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여기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기를.

 

전대한│jeondaehan@naver.com